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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노하우/역사

고산자 김정호는 백두산에 오르지 않았다? 대동여지도는 불태워지지 않았다?

by 섯거라 2020. 9. 10.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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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역사시간에 대동여지도에 대해 배울 때 이런 이야기를 배웁니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는 조선에 정확한 지도를 만들고 싶어서 자비를 들여서 평생의 업적으로 "실측"으로 매우 정확한 축척의 대동여지도를 만들었지만, 

    외침에 시달리던 흥선대원군이 "지도가 너무나도 정확해서 적을 이롭게하니 대동여지도는 불태워버리고 김정호는 죽여버려라"라고 해서 

    대동여지도는 불태워지고 김정호는 옥에 갖혀서 고생하다가 옥사했다.

    라는 것을 정사로 기억하고 있죠.

    참 우리는 우매한 시대를 살아온 것 같네요.

    가르치면 가르친데로 무조건 외우고 배워서 그 것이 진리인양 믿고 살고 있죠.

    과연 조선시대에 일개 평민이 조선팔도를 발로 걸어 다니면서 지도를 만든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그게 불가능한 일이니 김정호의 업적이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되겠지만....

    아쉽게도 김정호는 개인적으로 대동여지도를 제작한게 아니랍니다.

    김정호의 호는 고산자(古山子)로 재주가 특출난 인물로 여지학(輿地學:지리학)에 열중하여 두루 찾아보고 수집해서 지구도(地球圖)를 제작하였고, 또 대동여지도를 손수 판각하여 세상에 인포했다. 세상에 그 정밀하고 상세한 것은 고금에 찾을 길이 ㅇ벗다. 내가 한 질을 구해 보니, 진실로 보배로 삼을만하다. 동국여지고 10권을 편집했는데 탈고전에 죽으니 애석한 일이로다.

    조선후기 유재건의 "이향견문록"에 나오는 구절이예요.

    이향견문록은 조선건국이래 하층계급출신으로 각 방면에 뛰어났던 인물 308명의 행적을 기록한 책인데요.

    이 책의 성격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이 김정호는 양반이 아닌 하층민으로 추정해볼 수 있죠.

    대동여지도를 손수 판각할 만큼 기술이 뛰어났다는 점에서 짐작컨데 김정호는 조선에서 책의 인쇄등을 담당했던 관청인 교서관 소속의 목각 기술자였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어요.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시피 해요.

    김정호의 생몰년도에 대한 기록조차 없어서 그가 지리서를 발간한 연도로 대략 미루어짐작하기를 1804년 황해도에서 출생하여 1866년 무렵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죠.

    그렇게 김정호에 대해서는 알려진바가 별로 없었는데, 김정호라는 인물을 위인의 반열에 끌어낸 사람이 "친일파" 육당 최남선이라는 인간이예요.

    그가 주로 행했던 행적은 일제의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조작하고 일본을 찬양하던 일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그가 김정호를 역사의 인물로 끄집어 내었을 때 오롯이 순수한 의도로 김정호를 기술하지는 않았을거라는 사실은 자명하겠죠?

    1914년 10월 간행된 잡지 "청춘"에서 "오백년간 대표 일백인"이란 글을 게제하며 지리분야의 대표인물로 김정호를 툭 던져둡니다. 그리고 1925년 10월 8일,9일 동아일보에 '고산자를 회함'이라는 기사에서 최남선은 김정호가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수십년간 팔도 방방곡곡을 답사하고 백두산만 일곱번을 등반했다고 발표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좀 더 상세하게 1934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어독본'에 전국 팔도는 세번 일주했고 백두산을 여덟차례 등반했다고 기술해놓죠.

    글을 쓸 때마다 김정호가 백두산에 오른 횟수가 달라집니다.

    이에대한 정확한 사료도 없었는데 말이죠.

    한마디로 소설을 쓴거죠.

    그렇다고 김정호가 딱히 전국을 실측하면서 돌아다니지 않았다고 반박할 근거도 없어요.

    돌아다녔다고 증명할 수도 없지만, 돌아다니지 않았다는 증명도 할 수 없는 것이죠.

    여전히 추측과 가설들 뿐인 김정호의 업적인데요.

    이런 주장도 있어요.

    대동여지도는 김정호가 만든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인데요. 축지학자인 성남해라는 분이 대한 측량협회 기관지인 측량 제59호(2001년 11월호)에 '대동여지도 연구의 제문제'라는 연재에서 지적한 내용인데요. 타당성있는 근거로 조목조목 열거하고 있어요.

    요지인 즉슨 이렇습니다.

    1. 대동여지도의 표지에 山子校刊(고산자교간)이라고 쓰여 있는데, 교간은 '교정을 보아 간행하다'라는 뜻이므로, 김정호가 '저작'한 것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2. 지도제작은 현대사회에서도 개인이 할 수 없는 국가 사업이다. 지도제작에는 특수한 기술, 방대한 자본, 인원, 기간이 소요되는데 옛날이라 할지라도 최첨단의 기술을 적용해야 하므로 개인이 저작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라는 주장인데요. 일면 타당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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